"하느님의 생각은 고속도와 고밀도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볼 수가 없데요.
난 이렇게 생각해요. 하느님이 그 속도를 좀 낮추면 안 되나요? 그럼 사람들이 볼 수 있잖아요."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마침 지나가던 자전거 탄 사람을 가리켰다.
" 잘 보게, 자전거 바퀴가 돌지. 바퀴에는 살이 있지만 자넨 그걸 볼 수 없지.
분명 살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회전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걸 볼 수 없는 것일세.
좀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자네의 생각의 속도와 시감각이 느려서 볼 수 없는 거야.
자전거 탄 사람이 속도를 줄이면 바퀴살이 퍼져 보이지. 그가 완전히 정지하면 살은 분명히 보여.
하지만 그는 넘어지고 말아.
생각의 속도를 바꾼 하느님은 더이상 하느님이 아닐세.
대화하는 상대가 형광등이면 자넨 답답하지 않던가? 그의 생각 속도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면 괴롭지 않던가?"
"어르신의 생각의 속도는 얼마나 빠르죠? 나와 대화하는데 고통스럽지 않아요?"
"우리의 생활양식데로 사는 사람들은 과기세상의 사람들보다 다들 생각의 속도가 훨씬 빠르지.
옷걱정, 먹을 걱정, 그 외 수많은 걱정거리가 없으니 생각의 속도가 늦추어지지 않아.
내가 자네와 대화하는데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내 손녀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이지. 그 애가 원하는 거니까.
그 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 난 기쁘다네."
"아나스타시아의 생각의 속도는 얼마나 빠른가요?"
"그 애가 몇 초 동안 행한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린다네.
그래서 가끔 우리 생각엔 그 애가 비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해. 그래서 그 앤 늘 외롭지.
그 애 행위의 뜻을 우리가 바로 알지 못하니 그 애한테 별 도움이 못 된다네."
"아나스타시아의 생각의 속도라면 하느님을 볼 수 있나요?"
"힘들 거야. 그 애도 육에 살지 않나. 하느님도 육에 있지만 반만 그렇지.
그의 육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야.
아나스타시아는 이 육의 일부로서 가끔 뭔가를 낚아채지.
때로 엄청난 생각의 속도에 도달하면 그를 남들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겠지.
그렇다 해도 그건 일순간일 뿐이야."
"그래서 얻는게 뭐죠?"
"존재의 본질, 깨달음, 현자들이 평생을 구하고 서로서로에게 전하며 갈고 닦은 것을 그 애는 일순간에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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